인형 눈 붙이기와 색인 작업

돈을 줍는 방법 2010. 6. 12. 17:03 Posted by 행운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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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조엘 온 소프트웨어' 색인작업을 완료해서 출판사에 넘기고, 용어 검토를 끝낸 원고 뭉치를 전달하고 표지랑 띠지 점검까지 마친 다음에 콩나물 국밥에 백세주 한잔 걸치고 돌아와서 책 좀 읽다가 잤다. 오늘은 신세 한탄 좀 하련다.



2교 원고지가 온 방바닥을 빽빽하게 채운 좁은 방에서 향긋한 국화차를 마시며 색인 작업을 하고 있으려니, 예전에 딴지 일보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새록새록 나기 시작했다.


- 인형 눈 붙이기
가히 재택 단순 노무 알바의 대명사이자 지존이라 아니할 수 없는 성문기본 부업이요, 가내 부업의 정석이다. 공장에서는 인형 눈깔 하나를 낱개단위로 해서 100개들이 한 봉지당 5,000원씩 쳐 준다. 궁뎅이 안 떼고 하루종일 하면 하루에 4봉지까지 할 수도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증언이다. 풀을 적당히 묻혀야 예쁘게 붙는다.

- 봉투 붙이기
봉투 붙이기는 크기와 난이도에 따라 장당 10원에서 40원까지 수입의 편차가 있다. 요즘에는 봉투 붙이는 기계가 등장해서 부업거리로서의 봉투 붙이기가 점점 설 땅을 잃어가고 있지만 쇼핑백 붙이기는 여전히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 한 달 동안 꾸준히 해서 100만원 이상의 수입을 벌었다는 성공사례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 코일 감기
개당 4~5원 정도 받을 수 있다. 하루 5시간씩만 꾸준히 일하면 한 달에 20~40만원 정도의 수입을 벌 수 있다.

- 핸드폰 줄 붙이기
이동통신의 발달과 함께 창출된 21세기형 가내 부업이다. 개당 6원씩 쳐준다.

- 구슬 끼기
악세사리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적게는 개당 몇원, 많게는 30~40원까지 호가한다. 하루에 4~5시간씩 투자한다면 월 15~20만원 정도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

- 마늘 까기
밤이나 마늘까기와 같은 농산물 아르바이트는 무게 단위로 보수를 결정한다. 하지만 농산물 개방 이후 단가가 낮아져 전업으로 해도 월 4만원 정도밖에 수입을 얻을 수가 없다.


갑자기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냐구? 바로 번역 과정 후반부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색인 작업과 인형 눈 붙이는 작업이 노가다 측면에서 막상막하이기 때문이다.

아니, 색인은 출판사에서 요식행위로 하는 대충 건너뛰는 작업이 아니었던가? 땡~ 정확하게 틀렸습니다.

번역서 품질을 살펴보기 위해 jrogue군이 가장 먼저 펼쳐보는 곳은 서문도 본문도 역자 약력도 아니다. 바로 색인이 있는 페이지 뒷부분이다. 색인이 성의없는 책치고 제대로 된 책을 못봤으며, 색인이 잘되있는 책치고 나쁜 책을 아직 한번도 구경하지 못했다. 옷을 만드는 작업에 비유하자면, 색인은 단추 달기나 주머니 봉제와 같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성이 들어갔는지를 나타내는 바로미터이다.

이런 중요한 색인을 대충할 수는 없지. 암암... jrogue군은 "조엘 온 소프트웨어" 색인 준비 작업에 하루를 꼬박쓰고, 실제 색인 작업에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투입했다. 얼마나 대단한 노가다인지 한번 볼까?

i) 조엘 온 소프트웨어는 전체 45장(추가: 페이지가 아니라 chapter!, 조엘 온 소프트웨어 번역판 전체 분량은 500페이지에 육박한다.)이다. 실제 원서 뒤에 붙어있는 2단(1단 색인은 껌이지만, 2단부터는 손이 부들부들 떨릴거다) 색인 목록을 엑셀로 만든 다음에 페이지 비교표를 참조해서 각 단어가 몇 장에 있는지 기록한다. 나중에 단어가 나오면 해당 장을 빨리 펼일 수 있게 위치도 대충 기록해놓는다(첫페이지, 초반, 중반, 후반, 마지막 페이지 등으로...).
ii) 대충 색인 용어를 한글화한다. 문장으로 된 악질적인 녀석이 문제인데, 원서 대조가 필요할 수도 있다. 나중에 색인 후반 작업을 할 때 계속해서 색인 표제어를 다듬어 나가야 한다.

자... 여기까지가 초반 작업이고... 후반 작업이 더 웃긴다(아니 슬프다).

iii) 출판사에서 페이지가 결정된 원고 뭉치를 가져오는데, 장별로 분리시켜놓는다.
iv) 방바닥에 차곡차곡 장별로 정리해서 늘어놓는다.
v) 엑셀에 올린 매 단어마다 몇 장인지 파악해서, 원고 뭉치에서 정확한 위치를 찾아서 페이지를 기록한다.
vi) 잘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원서를 찾아서 위치를 파악한 다음 다시 한글 번역 원고에서 위치를 찾는다. 이 때 용어 충돌이 생기면 한글 번역 원고에서 바로 잡는다. 번역서에서 용어 차이가 많이 날 경우 색인 작업을 제대로 안했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1/4정도 진행해서 조금 탄력이 붙어 각 장 위치가 머리 속에 그려지면, 작전을 변경해서 장 단위로 엑셀에서 단어를 찾아가면서 해당 장에 나오는 모든 색인을 한꺼번해 처리하기 시작한다.

vii) 휴~ 모든 단어에 대한 페이지 기록이 끝났다면 가나다 정렬 작업으로 들어간다. txt 파일로 변경한 다음 awk나 sed 스크립트를 사용해서 공백을 지우고, 워드프로세서 매크로를 사용해서 2단에 나오는 모든 단어를 표제어 뒤에 붙인 다음에 정렬을 시키고 다시 워드프로세서 매크로를 사용해서 2단으로 분리한다.

이렇게 색인 작업을 끝내고 나면 온 몸이 다 저리고 쑤시고 눈은 침침하고 밥맛도 없고 삶에 대한 의욕도 잃어버린다. T_T

번역가라고 하면 세련되고 멋진 직업처럼 보이지만... 백조를 우아하게 물위에 둥둥띄우기 위해 진흙탕에서 휘젓는 물갈퀴를 생각하면, 프로그래밍과 마찬가지로 최첨단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뱀다리) 오늘 출판사에서 3교를 본 다음에 내일 필름을 뜬다고 한다. 대형 사고(?)만 안터지면 예정대로 4월 7일이나 8일 무렵이면 "조엘 온 소프트웨어"를 서점에서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다.
출처:
http://kr.blog.yahoo.com/jhrogue/13575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