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편개시 - 오욕칠정

돈에 관한 이야기 2007. 11. 29. 20:15 Posted by 행운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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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편개시<30단락>
단락: 30
페이지: 185~196

오욕칠정(五欲七情) 5월 21일 법문

『능엄경』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손가락을 누르면
해인(海印)이 빛을 발하지만, 그대가 마음을 움직이면 번뇌가 먼저
일어난다.” 하였습니다. 우리와 부처님은 이와 같이 다릅니다.

『능엄경』은 아난(阿難) 존자 때문에 시작되며, 우리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이 경 전체가 음(淫)이라는 한 자를 중심으로 설하고 있는데,
이 음 자 때문에 아주 많은 문장이 설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경이
설해진 경위는 이러합니다.
아난이 걸식을 할 때 음실(淫室, 창녀의 집)을 지나가다가 환술(幻術)을
 부리는 마등가(摩登伽)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는
사비가라(娑毗迦羅) 선범천주(先梵天呪)로 아난을 음석(淫席)으로 끌어들여, 음란한 몸으로 아난을 만지면서 바야흐로 그의 계체(戒體)를 훼손하려고 했습니다. 여래께서는 그가 음술(淫術)에 걸린 것을 아시고 식사가 끝난
뒤에 바로 돌아오시니, 왕과 대신, 장자(長者)와 거사(居士)들이 모두
 부처님을 따라와서 법요(法要)를 듣기를 원했습니다. 이때 세존께서는
정수리에서 백보무외광명(百寶無畏光明)을 놓으셨는데, 그 빛 속에서
천 개의 보배 연잎이 나오고 그 위에 부처님의 화신이 결가부좌하여
신주(神呪)를 설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文殊師利)에게 명하여
그 주문을 가지고 가서 아난을 보호하라고 하니, 마등가의 악주(惡呪)가
사라지고 문수사리는 아난과 마등가를 데리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난은 부처님을 뵙자 정례(頂禮)하고 슬피 울면서
시작도 없는 옛적부터 줄곧 많이 듣기만 했지 도력이 온전하지 못함을
 한탄하고 은근히 청하기를 시방(十方)의 여래가 깨달음을 얻으신
사마타(奢摩他)와 삼마(三摩)와 선나(禪那)의 최초 방편을 설해 주십사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의 청에 응하여 말씀하심으로써 이 『능엄경』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아난 존자가 마등가를 만난 것은 결코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이는 보살이 세간에 나툰 것으로, 그녀로 하여금 사랑을
버리도록 하기 위한 자비심으로 탐욕(애욕)을 빌려서 생사에 든
것입니다. 『원각경(圓覺經)』에서 말하기를, “일체 중생은 무시이래로
 갖가지 은애(恩愛)와 탐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윤회하는 것이다.
모든 세계의 일체 종성(種姓)의 난생(卵生), 태생(胎生), 화생(化生),
습생(濕生)이 모두 음욕(淫欲)으로 인하여 성명(性命)을 이루므로,
윤회는 사랑을 근본으로 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삼계의 윤회는 음욕을 근본으로 하고, 육도의 오고 감은
사랑을 뿌리로 한다.”고 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재가자건 출가자건,
 도를 닦는 사람이건 안 닦는 사람이건, 대개 자기의 성품을 밝히지 못한
 사람으로, 모두 오욕 가운데서 흘러가고 있습니다. 오욕이란 곧
재물욕(財), 색욕(色), 명예욕(名), 식욕(食), 수면욕(睡)입니다.
이 오욕으로부터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欲)의
칠정(七情)이 생기고, 칠정은 다시 오욕을 붙들어 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생사가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경(經)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남염부제(南閻浮提) 중생은 재물을
 목숨으로 삼습니다. 사람이 태어나게 되는 것은 음욕으로부터
시작되는데, 태어난 뒤에는 재물을 위주로 하게 됩니다. 광혜
화상(廣慧和尙)은 사람들에게 재물과 이익을 멀리하라고 충고하면서
 말하기를, “일체의 죄업은 모두 재보(財寶)에서 생긴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욕 중의 제일 첫 자가 재(財)인 것입니다. 사람은 재물이
 있어야 비로소 의식주가 있고, 여색(女色)과 장가드는 일을 생각합니다.
 만약 재물이 없으면 어떤 일도 이룰 수 없으니, 그야말로 재물이
 무서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은 재물이 있는 것은
 즐겁고 재물이 없는 것은 괴롭다고 생각하여, 재물이 없으면 재물을
가지려고 하고, 재물이 적으면 재물을 많이 가지려고 하며, 백은(白銀)을
가지고 있으면 또 황금을 가지려는 식으로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재물을 모았다 싶으면 또 자손들을 위해 모으고 싶어하며, 한평생
고생하면서 돈을 위해 바쁘게 삽니다. 그러나 돈이 있다 해도 어진
 자식을 돈으로 사기는 어렵다는 것을 모르며, 무상(無常, 죽음)이
한 번 닥쳐오면 단돈 1원도 가져가지 못하는데도, 돈과 재산의 이런
속성을 꿰뚫어 보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이전에 세 명의 거지가 있었는데, 한 사람은 손에 뱀 한 마리를 쥐고
있었고, 한 사람은 손에 연화락(蓮華落)26)을 쥐고 있었으며, 한 사람은
 손에 똥포대(糞袋, 땔감으로 쓰는 소똥을 주워담는 포대인 듯)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같이 길을 가다가 땅에 1문(一文)짜리 돈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맨 앞에 가던 거지가 보고 이 돈을 줍자, 두번째 거지가
말했습니다. “내가 먼저 보았으니까 이 돈은 마땅히 내 것이다.” 세번째
거지도 말했습니다. “내가 먼저 보았으니까 이 돈은 마땅히 내 것이다.”
세 거지는 곧 이 1문짜리 돈 때문에 길에서 치고 받고 싸웠습니다. 관청
의 관리가 지나가다가 그들이 흉악하게 치고 받는 것을 보고는 그러다가 사람이 죽을지 모른다 싶어 세 사람을 데리고 관청으로 가서 관원으로 하여금 시비를 판단하게 했습니다. 관원은 당상(堂上)에 앉아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물어서 알아낸 다음 말하기를, “이 1문의 돈은 어디에도 쓸데가 없으니 싸울 필요가 없다.” 했습니다. 세 사람이 다 말하기를, “저는 너무 가난해서 1문도 없는데, 왜 안 싸운단 말입니까?” 하니, 관원이 말했습니다. “그대들은 각자 가난한 상태를 말해 보라. 누가 가장 가난한지를 본 다음 내가 이 돈이 누구에게 가야 할지 판단하겠다.” 첫번째가 말했습니다. “제가 가장 가난합니다. 집은 비가 새고 천장으로 푸른 하늘이 보이며, 옷은 해어져 솔기가 없고, 베개는 흙벽돌이며, 덮는 것은 거적입니다.” 두번째가 말했습니다. “저는 이 사람보다 더 가난합니다. 푸른 하늘이 제 집이고, 입을 옷은 반 폭도 없으며, 베는 것은 제 주먹이고, 덮는 것은 근골입니다.” 세번째가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저만큼 가난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 번 굶으면 수십 일이요, 한 번 자면 반 년 이상입니다. 이 돈을 갖지 못하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관원은 듣고 나서 크게 웃었습니다.
이 단막극은 탐관오리를 비웃는 것이지만, 세존의 설법도 돈이 사람을 미혹시킨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무척 많습니다. 출가자도 돈에 많이 미혹됩니다. 옛날에는 쇠돈이었지만, 지금은 종이돈인데, 더 죽도록 피곤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것 없이는 하루도 지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대가 무엇을 생산하려면 작업 도구가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으면 작업 도구를 살 수 없고, 결국 아무것도 심지 못합니다. 우리가 온종일 바쁜 것은 이 돈을 얻기 위한 것 아닙니까?
세상 사람들은 의식이 족한 후에는 또 색을 탐하는데, 이 색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망쳤는지 모릅니다. 고래로 제왕이 색을 탐하다가 나라를 망하게 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옛날 하(夏) 나라 걸(桀)왕이 유시(有施)를 정벌하고 매희(妹喜)를 얻어 처로 삼았습니다. 이로부터 그는 황음무도(荒淫無道)해져서 결국 상(商, 나중에 은(殷)으로 국호를 바꾼 고대 왕조)의 탕왕(湯)에게 멸망당했습니다. 상(商) 나라의 주왕은 달기(●己)를 사랑하여 술을 즐기고 색을 좋아하며 포학무도해졌는데, 주(周)의 무왕(武王)이 그를 정벌하자 전쟁에 져서 스스로 불에 타 죽었습니다.
옛날에는 전화나 전보가 없어 변방에서 급박한 상황을 알리려고 할 때에는 봉수(烽燧, 봉화)를 올렸습니다. 그 방법은 흙으로 높은 대를 쌓고, 대 위에 두레박을 설치하는데, 두레박 위에는 바구니가 있어 그 안에 나무와 섶을 넣어 두었다가, 침략자가 있으면 즉시 불을 피워 서로 연락했으므로 이것을 봉(烽)이라 했습니다. 또한 땔나무를 많이 쌓아 두었다가 침략자가 쳐들어오면 태워서 연기를 보고 알게 했으므로 이것을 수(燧)라 했습니다.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에는 불을 올렸던 것입니다. 이 대에서 봉수가 올랐다 하면 이웃한 봉수대가 계속 이어가며 봉수를 올려, 변방을 지키는 군대에 보고한 것입니다. 주(周)의 유왕(幽王)은 포사(褒●)를 총애했는데, 그녀는 통 웃지를 않았습니다. 왕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그녀를 기쁘게 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웃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마침내 봉화를 올려서 제후들을 소집했습니다. 제후들이 군대를 이끌고 와 보니 침략자가 없어 허탕을 쳤고, 그러자 포사가 크게 웃었습니다. 나중에 서쪽 오랑캐인 견융(犬戎)이 쳐들어왔는데, 왕은 봉화를 올려서 군대를 소집했지만 제후들이 오지 않아서 결국 견융은 왕을 여산(驪山) 아래서 죽이고 포사를 잡아가 버렸습니다. 이 일을 두고 ‘봉화가 제후를 놀렸다’고 하는데, 색을 탐한 화는 한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이익과 명예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인데, 명예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더러는 좋은 이름을 후세에 남기지만, 더러는 오명을 후세에 남깁니다.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성군(星君) 현왕(賢王)의 전형입니다. 우(禹)는 홍수를 다스리라는 순 임금의 명을 받고 바깥에서 8년을 노심초사했는데, 자기 집 앞을 세 번이나 지나갔지만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아홉 개 주를 개척하고 도로 아홉 개를 뚫었으며, 못 아홉 개를 파고 산 아홉 개를 측량했습니다. 결국 모든 일을 해 마친 뒤, 9주의 공부(貢賦, 공물과 부세(각종 세금))를 정하고 다섯 가지 옷을 입는 제도를 마련했으며 네 오랑캐가 와서 조공하게 했습니다. 탕왕(湯王)은 밖에 나갔다가 새잡이(羅者, 그물로 새를 잡는 사람)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과, 땅에서 솟은 것과, 사방에서 모여든 것이 다 내 그물로 들어오게 하소서.” 하고 축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탕왕은, “허, 다 잡으려고 하다니.” 하면서 그물의 세 면을 풀고 한 면만 남겨 두게 하여, “왼쪽으로 가고 싶은 것은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고 싶은 것은 오른쪽으로 가고, 살고 싶지 않는 것은 내 그물로 들어오게 하소서.” 하고 축원하라 일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군 현왕이 좋은 이름을 후세에 남기는 덕의 은택(德澤)입니다. 왕망(王莽), 조조(曹操), 진회(秦檜) 등은 바로 오명을 후세에 남긴 사람들입니다. 여러 불보살과 여러 조사들은 참된 도덕이 있었으므로 이름이 나고자 하지 않았어도 이름이 천고에 길이 남았습니다. 선성(善星) 비구나 보련향(寶蓮香) 비구니는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는데,27) 죄가 컸으므로 자연히 오명을 후세에 남긴 것입니다.
명예란 것은 참으로 사람을 망치는 것입니다. 누가 그대에게 ‘훌륭하십니다, 도덕이 있으십니다, 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하셨군요’ 하면 즐거워하는 그것이 바로 명예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욕을 먹으면 불쾌해 하는 것도 명예 때문입니다. 좋게 말하든 나쁘게 말하든, 모두 명예에 끄달린 것입니다. 눈앞의 창은 피하기 쉽지만 뒤에서 쏘는 화살은 막기 어렵다 했습니다. 그전에 선방에서는 오후에 간식으로 죽을 먹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예불하러 가고 어떤 사람은 감치료(監値寮)에 가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누가 자기더러 공부를 잘 한다고 말하면 좋아하고, 좋지 않게 말하면 곧 시무룩한 얼굴이 되고는 했습니다. 소좌(小座, 승랍이 적고 직책이 낮은 승려)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를 좋게 말하면 기뻐하고 자기를 나쁘게 말하면 좋아하지 않는데, 이 역시 명예에 끄달린 것입니다.
먹는 것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습니다. “군자는 배불리 먹으려고 하지 않고, 편히 지내려고 하지 않는다(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論語」,‘학이’편) 했습니다. 고인은 한 마음이 도(道)에 가 있어서 야채로 허기를 채웠는데, 마음이 안정되어 있으면 채근(菜根)도 맛있습니다. 담주(潭州)의 용산(龍山) 화상도 그렇게 “한 못의 연잎으로도 옷이 무수하고, 지천으로 널린 송홧가루는 먹고도 남으니, 바야흐로 세상 사람들에게 사는 곳 알려지면 띠집을 옮겨서 더 깊이 들어가서 산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먹는 것을 탐내어, 오로지 시고 달고 쓰고 맵고 짜고 담백한 그 맛에 빠져서 제각기 맛난 음식을 찾으며, 함부로 생명을 죽여서 음식으로 삼습니다. 또한 채식을 하는 사람이 정진 음식(齋菜, 음식을 가리며 정진할 때 먹는 채소 음식)을 만들 때마저 고기 요리의 이름을 써서, 무슨 묶은 닭이니, 기름 육환이니 하는 따위로 부릅니다. 이것은 곧 습기를 잊지 못해서 살심(殺心)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니 비록 실제로 고기 요리를 먹은 것은 아니지만 계를 범한 것입니다. 좋은 음식이든 나쁜 음식이든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똥이 되고 마는데 왜 꼭 맛난 음식을 찾으며, 서로 먼저 먹겠다고 아우성을 칩니까? 좋은 음식을 많이 먹으면 방귀도 많고 똥도 많습니다. 뭐가 좋을 게 있습니까.
잠자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습니다. 수면을 탐하는 사람은 더 많습니다. 일 년은 삼백육십 일, 하루 24시간중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는데, 평균하면 1년에 180일을 잠잡니다. 이 잠자는 일이 적지 않게 세월을 낭비하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사람을 죽도록 괴롭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수행인이라면 세월을 아깝게 생각하여, 『불유교경(佛遺敎經)』에서 말하듯이, ‘낮에는 열심히 좋은 법(善法)을 닦아 익혀 시간을 헛되이 버리지 말고, 초저녁과 새벽에도 역시 공부를 놓지 말며, 한밤중에는 경을 독송하여 스스로 마음을 가라앉혀, 잠자는 것 때문에 일생을 헛되이 보내어 아무 소득이 없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둥근 베개(圓枕)나 부도단(不倒單) 등의 방법을 써서 수마를 극복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도심(道心)을 일으키지 않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며, 먹기를 좋아하고 게으른 사람이 특히 수면을 탐합니다. 이쪽에서 자다가 깨면 저쪽에서 또 잡니다. 이렇게 밤낮으로 계속하여, 경을 볼 때도 자고 설법을 들을 때도 자며, 좌선할 때도 자고 염불할 때도 잡니다. 이 좋은 세월을 전부 다 낭비해 버리니, 결국 출가는 뭐 하러 한 것입니까? 고덕(古德)이 말씀하시기를,

聞鐘臥不起 종소리 듣고도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면
護法善神嗔 호법선신들이 화를 낸다네.
現世滅福慧 금생에는 복과 지혜가 사라지고
死後墮蛇身 죽어서는 뱀 몸을 받는다네.

하였습니다. 위산(●山)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초심자가 용렬하고 게을러, 도철(●●)처럼 먹는 것만 찾고 그럭저럭 지내면서 인간 세상에서 덧없이 세월만 보내면 결국에는 거친 사람이 되고 만다.” 하였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가슴 아프고 한탄스러우며, 슬프고 안타까운데 어찌 입을 다물고 서로 경책하지 않으리오.”(「위산경책)) 했습니다. 마음을 가지고 도를 구하거든 생사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절대로 다시 오욕칠정에 끄달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힘써 부지런히 닦아서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십시오.185~196

출처:
현대불교미디어센터
http://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