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마을 이야기

돈에 관한 이야기 2008. 1. 23. 13:03 Posted by 행운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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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마을

어떤 마을에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 마을에 빨간 옷을 입은 나그네가 찾아왔어요. 그 날은 마침 장날이라 장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어요. 나그네는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연설을 하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우리 모두 함께 잘 삽시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서 삽시다."

그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웅성거렸어요.

"아니, 누가 잘 살기 싫어서 그런가? 땅도 없고, 집도 없으니까 그렇지."

"아, 글쎄, 잘 살기 싫은 사람이 어디 있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잘 산다는 말이요?"

나그네: "여러분 모두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리 가까이 모이시오."

마을 사람들은 귀가 솔깃해서 나그네 앞으로 바짝 다가갔어요.

나그네: "그러니까 대감이나 부자들이나 농부나 머슴이나 똑같이 잘 사는 겁니다."

"아, 글쎄 대체 어떻게 하면 잘 산다는 거요? 빨리 좀 말해 보시요. 이거 어디 답답해서 살수 있겠나."

이제 막 장가간 오서방이 답답하다는 듯이 재촉했어요.

나그네: "그것은 간단합니다. 모든 문서를 없애는 겁니다. 땅 문서, 집 문서, 노예 문서 등을 모두 없애 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땅을 똑같이 나누는 것입니다. 집터도 똑같이 나누고, 논도, 밭도, 돈도, 쌀도 모두 똑같이 나누면 됩니다."

"에이! 여보슈. 그렇게 했다가 주인님한테 매맞고 쫓겨나면 어떻게 하라고 그러슈. 이 사람 큰 일 날 소리 하고 있네."

"아니, 매만 맞는 것이 아니라, 관가에 끌려가서 죽도록 곤장 맞지. 어쩌면 목이 날아갈지도 몰라."

"당신 제 정신이유? 정신 나간 소리 그만하고 빨리 도망가시구려."

나그네: "여러분! 여러분은 아직도 노예 근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이 마을에 부자가 많소? 아니면 가난한 사람이 많소?"

"그야, 가난한 사람들이 많지."

나그네: "바로 그거요! 여러분들은 열심히 일해서, 몇 사람 안되는 부자들에게 갖다 바치는 것입니다. 그 땅 문서 하나 때문에, 여러분이 피땀 흘려 거둔 곡식을 부자에게 갖다 바치는 것입니다. 그 문서가 없다면 그 곡식들은 누구의 것입니까? 누가 주인입니까? 바로 여러분이 주인입니다. 몇 명 안되는 부자들을 이 마을에서 쫓아냅시다. 그리고 땅 문서를 여러분 이름으로 다시 만들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삼돌이 아빠가 불평을 털어놓았어요.

"맞아. 내가 열심히 농사지어서 이대감한테 쌀 열다섯 가마니를 소작료로 냈더니, 적다고 더 가져오라는 거야. 나 혼자 일년 동안 힘들게 일했는데, 대감은 손가락하나 까닥하지도 않고 적다는 거야. 나는 평생 힘들게 일하고도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이대감은 놀기만 하고도 잘 살고 있어. 땅 문서를 없애야 돼."

눈만 껌벅껌벅거리던 뚝쇠가 컬컬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뚝쇠: "그래요. 저도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일했어요. 오늘 아침에 마당을 쓸고 있다가, 아씨 마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봤어요. 그런데 머슴이 아씨 마님을 쳐다봤다고, 곤장을 때려서 무진장 얻어맞았어요. 아직도 엉덩이가 욱신거려서 앉을 수가 없어요. 노예 문서를 없애야 돼요! 주인님을 몽둥이로 당장 쫓아내야 돼요!"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렸어요. 삽시간에 장터는 이상한 분위기로 술렁거렸어요. 그때 몇 몇 젊은 총각들이 벌써 몽둥이를 들고 나왔어요.

"가자! 부자들을 쫓아내자! 재산을 뺏어서 나눠 갖자! 쌀을 가져와서 배불리 먹자!"

마을 사람들은 곡괭이, 낫, 망치, 도끼 등을 들고 나왔어요. 그리고는 '와아!'하고 고함을 지르며 이대감 집으로 몰려갔어요.

사람들의 고함소리, 비명소리, 울부짖는 소리, 울음소리, 물건 부수는 소리, 아우성 소리에 온 마을은 아수라장이 되었어요.

그리하여 이대감은 죽고, 그 가족들은 집 밖으로 쫓겨났어요. 황부자도 몽둥이로 얻어맞아 팔이 부러졌어요. 김씨 일가는 밤에 몰래 마을을 떠나, 아랫 마을로 도망쳤어요. 이제 이 마을에 있던 부자들은 모두 떠났어요.

나그네: "여러분! 이제 우리들의 천국이 찾아왔습니다. 부자도 없고, 권력자도 없어졌습니다. 땅 문서도, 집 문서도, 노예 문서도 없어졌습니다. 머슴도 없어졌습니다. 모두가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누어 먹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친구요, 동무입니다. 동무 여러분! 우리 모두 잘 삽시다!"

마을 사람들은 신이 나서 박수를 치며 함성을 질렀어요.

"노동자, 노예, 머슴, 농민 만세!"

"나그네 만세!"

마을 사람들은 나그네를 따라서 빨간 옷을 입고 다녔어요. 빨간 옷을 안 입고 있으면 잡혀갔어요. 모두가 빨간 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이 마을을 빨강 마을이라고 불렀답니다.

빨강 마을은 새 세상이 되었어요. 법도 생활도 달라졌어요. 나그네는 전에 이대감이 살던 집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그를 나그네 대감이라고 불렀어요. 나그네 대감은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곡식과 재물을 모두 대감집 창고로 나르게 했어요. 개인적으로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개인 재산은 모두 바쳐야 했어요. 그리고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만큼의 쌀과 채소와 다른 곡식들을 똑같이 배급 주었어요. 이제 똑같이 사는 세상이 되었어요.

그런데 밥을 많이 먹는 뚝쇠에게는 배급주는 쌀이 모자랐어요. 그래서 늘 배가 고팠어요. 뚝쇠는 열심히 일했지만 쌀을 더 주지 않았어요. 일은 잘 안하고 꾀만 부리는 얌체 같은 뺀질이 녀석과 똑같은 양의 쌀을 배급받았어요. 뚝쇠는 그것이 불만이었어요.

"먹는 것만 똑같이 주면 어떻게 해? 일도 똑같이 해야지?"

뚝쇠는 배고파서 쌀 좀 더 달라고 말을 했다가, 나그네 집에 있는 어두운 광으로 끌려가서 실컷 얻어맞았어요. 기어서 집에 돌아온 뚝쇠는 혼자서 중얼거렸어요.

"뺀질이보다 일을 더 열심히 했으면, 쌀을 더 많이 줘야지. 열심히 해도 소용이 없잖아. 이제부터 내가 열심히 일하나 봐라. 힘들게 일해도 소용없는데, 내가 바보인가? 일을 안하면 되지."

뚝쇠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점점 게으름을 피웠어요.

대장장이 장팔이도 뚝쇠와 똑같은 불만을 가졌어요. 뜨거운 불에 쇠를 달구어서, 낫을 만들어 놓으면 대감 집에서 다 가져갔어요. 낫을 열 개 만들거나, 스무 개 만들거나 배급나오는 쌀의 양은 같았어요.

장팔이: "힘들게 땀흘려서 일을 많이 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 공연히 골병만 들지, 골병들고 말고."

장팔이도 슬슬 핑계를 대며, 게으름을 피웠어요.

전에 이대감 집에 있었던 먹쇠는 이번에도 대감집에서 살게 되었어요. 이대감 대신에 나그네 대감을 모시게 된 것이지요. 먹쇠가 하는 일은 집집마다 다니며, 마을 사람들이 수확해 놓은 곡식들을 대감집 창고로 나르는 것입니다. 매일 풍성한 곡식들과 과일들을 보니까, 정말 부자가 된 기분이었어요. 먹쇠는 부족한 것이 없었어요. 먹고 싶을 때에는 언제든지 먹을 수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들 몰래 먹으면 괜찮아요. 아무도 모르니까요. 먹쇠는 늘 신이 났어요.

"사람은 줄을 잘 서야지 돼. 누구를 따라야 할 지를 알면, 출세하는 법이지.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이 따로 있나 ?"

나그네 대감은 새로운 법을 또 만들었어요. 한 집에서 소 한 마리 이상 가질 수 없다고 했어요. 한 마리 이상의 소를 가지고 있으면, 나머지 소는 빼앗아 갔어요. 소 한마리 이상 가지고 있으면 부자라서 그렇데요. 부자는 빨강 마을에서 살 수가 없으니까요. 마을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마구 때리고, 빼앗아 갔어요. 닭도 열 마리 이상 가지고 있으면 안 되었지요. 대감집 창고에는 재물이 더 많이 쌓이게 되었어요.

빨강 마을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되었어요. 일할 의욕을 잃었어요. 열심히 일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부지런히 가축을 길러도 내 것이 아니었어요. 내가 가꾼 채소도 내 마음대로 먹지 못했어요. 불평을 하면, 대감집에 끌려가서 힘센 먹쇠한테 두둘겨맞으니까요. 마을 사람들은 불만이 있어도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먹쇠를 보기만 해도 두려워했어요.

한 번은 오서방이 나그네 대감에 대해서 불평을 했는데, 열 다섯 먹은 오서방 아들 녀석이 먹쇠한테 일러 바쳤어요. 오서방은 끌려가서 매맞아 죽었어요. 오서방 아들은 훌륭한 일을 했다고 훈장도 받았어요. 그리고 대감집에서 잘 살게 되었어요. 나그네는 오서방 아들을 영웅이라고 불렀어요.

마을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되었어요. 추수를 하면 수확량이 전에 보다 많이 줄었어요. 대감집의 창고에 있는 곡식들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먹쇠는 마을 사람들을 강제로 일하게 시켰어요. 아이들도, 여자들도, 노인도 일하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마지못해서 일을 했어요. 매맞지 않으려고 일을 했어요. 말도 하지 않고 일을 했어요. 이웃하고도 말하는 것을 꺼렸어요. 불만을 말했다가 먹쇠 귀에 들어가면 큰 일 나니까요. 집에 들어와서 가족들하고도 할 말이 없었어요. 그저 모두 피곤해서 잠만 잤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면, 가족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일하러 나갔어요. 아침에 별을 보며 일하러 가고, 밤에 다시 만나면 밥 먹고, 또 잠자는 거예요.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었어요. 일요일에 교회에도 못 가게 했어요. 절에도 갈 수 없었어요. 똑같은 일이 매일 계속 되었어요. 별로 웃을 일이 없었어요. 모두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살았지요.

이 마을에서 잘 사는 집은 대감집 밖에 없었어요. 맛있는 음식 냄새가 매일 풍겨 나왔고, 웃고 즐기는 소리가 끊일 날이 없었어요. 나그네는 정말로 부자가 되었어요. 세상에 없는 것이 없고,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어요. 나그네 대감의 천국이 되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대감님의 생일날이 제일 좋았어요. 이 날에는 고깃국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고깃국에 쌀밥만 먹는 날은 일 년에 한 번 뿐이니까요. 아이들도 이 날을 기다렸어요. 이 날에는 사탕과 과자가 선물로 나오니까요.

빨간 옷을 입은 대감은 지금도 대청 마루에서 연설을 합니다.

"노동자, 농민 여러분! 우리 모두 잘 삽시다! 노동자, 농민이 주인인 우리 마을을 부자 마을로 만듭시다!"

이제 머리가 허옇게 된 삼돌이 아빠, 박영감이 혼자말로 중얼거렸어요.

"내가 저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삼돌이가 아마 일곱 살 이었지. 삼돌이가 장가가서 낳은 손자가 벌써 장가들 나이가 되었으니. 벌써 세월이 그렇게 덧없이 흘러갔어. 언제나 잘 살게 될까?"

박영감 옆에는 손자 녀석인 장돌이가 빨간 옷을 입고 서있었어요. 장돌이는 대감의 연설을 듣고 나서, 손뼉이 부서질 듯이 힘껏 박수를 치고 있었어요.

"짝 짝 짝 짝......"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출처: http://user.chol.com/~samsop/2fable15.html